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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매니지먼트

내면의 기술 05. 다그쳐서 나아진 적, 있으신가요?

다그쳐온 나에게, 이제는 돌보는 법을 가르쳐줄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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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을 놓치고 돌아서는 순간, 익숙한 자책의 목소리가 다시 올라옵니다

회의실 문을 엽니다.

오늘은 꼭 한마디하자고, 자리에 앉기 전부터 다짐했습니다.

안건이 올라오고, 타이밍을 잽니다. 지금인가, 아직인가.

이때, 다른 사람이 먼저 말합니다. 또 한 명이 이어받습니다.

손에 쥔 펜을 몇 번 돌리다가, 그대로 내려놓습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납니다.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자리로 돌아오는 길, 익숙한 목소리가 올라옵니다.


"또 이러네."

"나는 왜 항상 이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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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나 사이에 틈은 만들었지만, 그 틈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는 아직 막막합니다

01  그 목소리, 알아차리면 충분할까요?

지난 편에서 이 목소리를 다뤘습니다. 멈추고, 알아차리고, 그 뒤에 숨은 욕구까지 들여다보는 것. 그 연습을 해오셨다면, 이미 많은 게 달라졌을 겁니다.


목소리에 휩쓸리던 자리에서, 목소리를 지켜보는 자리로.


"나는 왜 항상 이렇지"라는 생각이 올라올 때, 예전엔 그 생각이 곧 나였습니다. 이제는 "지금 이 생각이 올라오고 있구나" 하고 한 걸음 물러나 볼 수 있습니다.


이 한 걸음이 생각과 나 사이에 틈을 만들고, 그 틈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다음을 가릅니다.


그런데 많은 분이 여기서 멈춥니다. 물러나서 바라보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되는데, 그다음이 없는 겁니다.


"알아차리긴 했어. 그래서, 이제 뭘 하지?"


틈은 만들어졌는데, 그 틈이 비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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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오류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마음에는 돌봄이라는 또 다른 처방이 필요합니다

02  그 틈, 무엇이 비어 있었던 걸까요?

손을 다쳤을 때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상처 난 손을 붙잡고 "왜 이렇게 덤벙대냐"라고 다그친다고, 그 상처가 빨리 아물지는 않습니다.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고, 돌봐야 낫습니다. 


마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심리학에서도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 있습니다.

영국의 임상심리학자 폴 길버트(Paul Gilbert)는 원래 인지치료로 환자들을 치료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비판과 수치심이 유독 심한 환자들에게서 이상한 걸 발견합니다. 생각의 오류를 논리적으로 짚어주면, 환자들은 "맞아요, 제 생각이 왜곡됐네요"라고 완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머리는 설득이 끝났는데, 몸과 감정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던 겁니다.

길버트는 여기서 질문을 바꿉니다.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아는 것"과 "실제로 편안해지는 것" 사이에, 다른 무언가가 빠져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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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는 3가지 정서 시스템이 있습니다. 위협 시스템, 추동시스템, 돌봄시스템이죠.

그렇게 찾아낸 게, 우리 안에 있는 세 가지 정서 시스템입니다(Gilbert, 2009). 위협 시스템(Threat system), 추동 시스템(Drive system), 돌봄 시스템(Soothing system).


위협 시스템은 위험을 감지하면 울리는 경보 장치입니다. 마감이 코앞일 때의 초조함, 상사의 표정 하나에 굳어버리는 몸. 화와 불안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리고 자기비판도 이 경보의 한 형태입니다. "또 실수하면 안 돼"라고 나를 다그치는 목소리는, 뇌 입장에서는 나를 지키려는 방어인 셈입니다. 


추동 시스템은 목표를 향해 달리게 하는 엔진입니다. 성과를 내고, 인정받고, 다음 할 일을 해치우게 만드는 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할 일부터 떠올리게 하는 것도 이 엔진입니다. 직장인의 하루를 실제로 굴리는 시스템이죠. 


그리고 돌봄 시스템. 안전하다고 느낄 때 켜지는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이 켜지면 경보가 잦아들고, 긴장이 풀리고, 소모된 것이 회복됩니다. 내 편인 사람에게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몸이 스르르 풀리던 순간. 그때 켜져 있던 게 이 시스템입니다.


자기비판이 유독 심한 사람일수록, 이 돌봄 시스템이 잘 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게 길버트가 임상에서 주목한 지점이었습니다. 위협 신호는 계속 울리는데, 그걸 가라앉혀줄 스위치를 찾지 못하는 상태인 겁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하루도 비슷합니다. 회의에서 말 못 한 걸 자책하고(위협 시스템), 그 마음을 안은 채 다음 일정으로 넘어갑니다(추동 시스템). 돌봄 시스템은 한 번도 켜본 적 없이 하루를 마감하는 거죠.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그치는 법과 달리는 법은 수없이 익혀왔습니다. 목표를 세우는 법, 시간을 관리하는 법, 부족한 점을 찾아 고치는 법. 그런데 힘든 순간에 나를 돌보는 법만큼은,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스위치가 고장 난 게 아니라, 그 스위치를 제대로 켜본 적이 없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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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대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는 자기자비라는 개념을 세상에 처음 내놓았습니다.

03 돌봄 시스템은 어떻게 켜는 걸까요?

이 스위치는 근육과 비슷합니다. 써야 자라고, 안 쓰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켜본 적 없는 근육은, 막상 필요한 순간에 힘을 못 씁니다. 그래서 미리, 그리고 자주 켜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 훈련을 20년 넘게 연구해 온 사람이 텍사스대 크리스틴 네프(Kristin Neff)입니다.


네프는 대학원 시절,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명상 수업에서 '자기자비'라는 개념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심리학자로서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합니다. 심리학은 자존감에 대해서는 수천 편의 연구를 쌓아왔는데, 정작 실패한 순간에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제대로 연구된 적이 없었던 겁니다. 네프는 이 오래된 개념을 측정 가능한 과학의 언어로 옮긴 첫 연구자가 됩니다.


네프가 정의한 자기자비(Self-Compassion)는 이렇습니다. 어려운 순간에 자신을 따뜻함과 이해로 대하고, 그 어려움이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일임을 아는 태도(Neff, 2003).


그리고 이 태도는 세 가지 요소로 이뤄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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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Mindfulness)입니다. 지금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마음챙김(Mindfulness)입니다. 지금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억누르지도 않고, 그 생각에 잠겨 한없이 되감기 하지도 않고. "지금 내가 꽤 쓰라리구나." 이 한 문장이 시작입니다. 앞에서 만든 그 틈에 서는 일이, 바로 이 마음챙김입니다.


두 번째는 보편적 인간성(Common humanity)입니다. 이 어려움이 나만의 결함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입니다. "왜 나만 이러지"라는 생각은 나를 세상에서 떼어내 고립시킵니다. 그리고 고립감은 우리 뇌가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위협 신호 중 하나입니다. 회의에서 타이밍을 놓치는 일은 나만의 실수가 아니라, 회의실에 앉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입니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를 아는 순간, 경보 하나가 꺼집니다.


세 번째는 자기친절(Self-kindness)입니다. 그렇게 알아차린 나에게 실제로 따뜻한 말과 태도를 건네는 것입니다. "왜 나는 항상 이 모양이지" 대신 "오늘 많이 긴장했었나 보다"로. 친한 후배가 같은 일을 겪었다면 건넸을 그 말을, 나에게도 건네는 것. 다정한 말투는 기분 문제가 아니라, 몸에 "지금은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입니다. 


이 셋이 함께 있을 때, 몸은 비로소 위협 시스템에서 돌봄 시스템으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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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기회를 주자, 실패한 자신을 자비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 집단이, 자존감을 북돋아 준 집단이나 아무 처치도 없던 집단보다 재시험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04  그런데, 그러다 나태해지는 건 아닐까요?

여기서 흔히 이런 걱정을 합니다. 나한테 이렇게 관대해지면, 나를 합리화하고 안주하게 되는 건 아닐까. 문제를 대충 넘기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실제 연구들은 정반대를 가리킵니다.


듀크대 마크 리어리(Mark Leary) 연구팀은 사람들이 실패나 창피한 일을 겪은 뒤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여러 실험으로 살펴봤습니다. 자기자비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부정적 감정에 덜 휩쓸렸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일에 대한 자기 책임을 더 기꺼이 인정했습니다(Leary et al., 2007). 방어할 필요가 줄어드니,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 겁니다.


UC버클리의 브라인스(Breines)와 첸(Chen) 연구팀은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참가자들에게 아주 어려운 시험을 치르게 했습니다. 당연히 대부분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재시험 기회를 주자, 실패한 자신을 자비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 집단이, 자존감을 북돋아 준 집단이나 아무 처치도 없던 집단보다 재시험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떠올리게 한 실험에서도, 자기자비 집단은 사과하려는 동기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동기가 더 높았습니다(Breines & Chen, 2012).


다그침은 경보를 울려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고, 돌봄은 경보를 꺼서 움직일 힘을 되돌려줍니다. 다그침이 아니라 돌봄이 있어야, 다시 나아갈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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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잘 나오지 않는 날엔, 손을 가슴이나 배 위에 가만히 얹는 것만으로도 됩니다. 따뜻한 접촉은 몸에 안전 신호를 보내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05  자책이 올라오는 순간, 무엇부터 해볼 수 있을까요?


퇴근길이든, 잠들기 전이든, 자기비판이 올라오는 순간은 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왜 나는 항상 이 모양이지." "이걸 왜 못 했지." "나만 왜 이러지."


그 순간, 세 가지 요소를 그대로 순서 삼아 해보는 겁니다.

먼저, 알아차립니다. "지금 자책이 올라오고 있구나." 그 목소리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다음, 한 문장을 더합니다. "근데, 나만 그런 게 아니야." 오늘 어딘가의 회의실에서, 누군가도 똑같이 펜만 돌리다 나왔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말을 바꿔 건넵니다. 다그치는 말 대신, 나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건넬 법한 말을요.

"많이 신경 쓰이는구나." "그럴 수 있어." "오늘 좀 힘들었네."

말이 잘 나오지 않는 날엔, 손을 가슴이나 배 위에 가만히 얹는 것만으로도 됩니다. 따뜻한 접촉은 몸에 안전 신호를 보내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처음엔 어색할 겁니다. 남에게는 잘만 하던 말이, 나에게 하려니 영 입에 붙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 어색함을 안은 채로, 한 번 해보는 겁니다.


자기자비란, 나를 감싸고 넘어가는 게 아닙니다. 꺼져 있던 돌봄의 스위치를, 내 손으로 다시 켜는 일입니다.

한 번 켜본 스위치는, 다음엔 조금 더 쉽게 켜집니다.


오늘, 나를 다그쳤던 그 목소리, 어떤 말로 바꿔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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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아 소장

PSI컨설팅 교수센터 마음챙김 & 회복탄력성 연구소장

"내면을 연구하고, 찰나를 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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